[리뷰] 전자기기 1년동안 만든 3+1개의 자작 CNC


몇년 전부터 저는 목공에 대한 로망이 있었습니다.

다만 완전히 기계화, 자동화된 목공에 대한 로망이요...

가구 같은걸 만들려면 테이블쏘를 쓰는게 거의 필연적인데, 너무 무섭더라구요!

제 손가락은 소중하니까요....


그래서 기계가 대신 잘라주는 CNC를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일단 내가 만든 도면을 가지고 실제 생활에서 사용 가능한 가구같은걸 만든다는게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레이저로 아크릴 절단을 몇번 해보고 난 뒤, 생각보다 현실성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수년전, MaslowCNC라는 개인이 구매 가능한, 원장 (자르지 않은 합판) 사이즈의 가공이 가능한 CNC 키트에 대한 글을 보고 로망을 불태우게 되었죠..



Maslow CNC

2019년 말에 드디어 공방을 구하고, MaslowCNC 키트를 구매해서 조립을 하게 됩니다.


MaslowCNC는 수직 방향으로 세워서 사용하는 CNC 기기입니다. 일반적인 CNC 기기들은 가로(x축), 세로(y축), 높이 (z축) 이렇게 각 축마다 이송레일이나 볼스크류 같은 구조물과 스테퍼 모터를 사용해서 움직이는데 반해, MaslowCNC는 철로 된 체인으로 라우터 (나무를 자를수 있는 비트 같은 공구)를 매달아서 중력을 활용해서 움직이는 획기적인 컨셉이죠...




MaslowCNC의 핵심 구성 요소중 하나가 바로 나무로 짠 프레임인데... 각도절단기랑 임팩을 써서 어찌 어찌 구조목을 절단해서 만들수가 있었습니다.



MaslowCNC 제작사쪽에서 추천하는 라우터인 ridgid 제품을 사용하느라 110볼트 변압기도 연결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굳이 이걸 쓸 필요는 없었을것 같습니다.



실제로 MaslowCNC를 조립하고.. 소프트웨어도 연결하고.. 도면을 NC파일로 변환해서 나무를 잘라보니까.. 잘 되더군요!



지금도 작업실에서 사용중인 이 스툴은... 사실 CNC 컷팅할때 엄청나게 오차가 많이 나서 목공 본드로 붙인 느낌이지만, 그래도 첫 작품인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뒤로 책장도 만들어보고...


집에서 쓸 간단한 선반도 만들어밨습니다.


MaslowCNC의 장단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장점>

- 그래도 저렴한편 (500달러 미만)

- 수직 구조로 공간을 적게 차지함

- 합판 원장 크기를 자를수 있어서 가구 같은걸 만들수가 있음

- 집진이 생각보다 잘됨 (구조적으로 합판 위에 밀착해서 라우터판이 움직이기 때문에)


<단점>

- 소프트웨어적인 보정을 거쳐서 X, Y축을 구현하기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지고, 칼리브레이션이 너무 힘듬

- 느림 (피드레이트가 분당 600mm 정도 - 가구 하나 자르려면 하루 종일 걸림)

- 과도기적인 설계 때문에 각종 트러블이 많이 발생함 (Z축이 맛이 간다던지... 합판 가장자리에서는 정확도가 확 떨어진다던지...)

- 구조상 원장보다 작은 목재나, 두꺼운 목재, 또는 금속등을 가공이 어려움


나름 Maslow로 가구도 엄청 많이 만들고.. 합판도 20장 가까이 가공했는데, 결국 다른 자작 CNC로 갈아타게 됩니다 (이건 끝에서...)


MPCNC

Maslow를 써보고, CNC에 대해서 자신감이 좀 생기다보니... 작은 크기의 CNC에 관심이 생기게 됐습니다.

굳이 원장 크기 CNC가 있는데 소형 CNC가 왜 필요할까? 라고 생각할수 있는데... 일반 탁상형으로 상대적으로 목재 두께에 자유롭게 가공이 가능하고, 또 원장 가공하고 남은 짜투리 목재들을 가공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다가 200달러대 키트로 조립이 가능한, 자작 CNC 프로젝트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그게 MPCNC(Mostly Printed CNC)이죠.



주요 부품들은 3D 프린터로 PLA로 뽑고, 쇠파이프로 골조 잡고, 철물로 조립하는... 획기적인 CNC 기기입니다.


그래서 키트 주문하고... 3D 프린터를 질러버리고... 열심히 파트 뽑아서, 조립했습니다.



근데 재밌더라구요! 마치 레고 조립하듯이 3D프린팅된 부품들이 모여서 그럴싸한 형태를 갖추어가는게..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스테퍼 모터들도 부착하고... 컨트롤러도 달고...



바닥에 목재 고정 위한 도그홀도 만들고... 완성!



나름 괜찮은 성능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MaslowCNC에서는 6mm 날만 사용했는데, 1/4인치 날 (3.175mm) 날을 써보니까 정교한 가공이 가능해서 매력적이더군요.



사실 MPCNC는 만드는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웠습니다. 중간 중간 스트레스 받을 일도 있긴 한데 (특히 소프트웨어 관련) 이것도 취미로 삼으실수 있는 분이라면 정말 괜찮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원작자가 추천하는 marlin 펌웨어 대신에 grbl 펌웨어를 깔고, 또 각 축별 좀 더 세밀한 영점 기능을 넣느라고 되게 고생을 좀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아두이노로 펌웨어 빌드하고, 플래싱이 가능한분이 아니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실것 같습니다만... 성취감도 장난이 아니죠.


<장점>

- 싸다! (사실 키트 구매할 필요도 없이, 부품들 직접 구하면 10만원대도 가능할것 같습니다. 물론 라우터 제외)

- 그래도 어느 정도 잘 돌아가는 탁상형 CNC

- 활발한 커뮤니티 (MaslowCNC보다 지원이 잘 됨... 물론 영어 포럼만 있음..)


<단점>

- 조립이 엄청나게 번거로움 (이걸 즐기는 사람에게는 장점...)

- 소프트웨어 부분, 그리고 설정 관련해서 선택의 여지가 너무 많아서 사실상 완전히 CNC를 자작하는 수준 (이것도 장점일수도...)

- 너무 크게 만들면 (400mm x 400mm 이상) 안정성이 너무 떨어짐 (6mm 날은 사실상 사용이 힘듬...)

- 느림! (MaslowCNC보다 더 느립니다.. 이건 제가 조립을 잘못해서 불안정해서 그랬을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MPCNC로 막 알루미늄도 가공하고... 잘 쓰던데, 전 너무 불안정해서 실망하고... 레디메이드 탁상형 CNC로 갈아타기로 했습니다. 바로 Shapeoko (쉐이포코)로...


MPCNC는 봉인해뒀다가.. 나중에 Lowrider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Shapeoko

사실 MPCNC를 조립하기 전에 쉐이포코나 x-carve같은 레디메이드 탁상형 CNC를 좀 고민해봤는데...

결국 MPCNC를 조립해보고 그 한계를 직접 느끼고 쉐이포코를 주문하게 됩니다. 국내 수입 판매 업체도 있는데... 좀 비싼것 같아서, 미국에서 직접 주문했는데... 한미FTA때문에 혜택이 있어서 나쁘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여기부터는 100만원 이상하는 비싼 CNC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쉐이포코는 자작은 아닙니다. 키트를 조립하기만 하면 되는 완성품 CNC이기 때문이죠...

근데 조립하다보면 사실 자작하는거랑 과연 어떤 차이가 있지? 하고 느끼긴 합니다.



주문하면.. 이런 박스들에 담겨서 배달이 오고요...



짜잔.. 조립 완료....

조립 가이드도 간결하고.. 선정리도 준비가 되어있고... 소프트웨어도 규격화가 되어있어서 정말 편하더군요.

쉐이포코는.. MPCNC에 비하면 정말 안정적으로 잘 돌아갔습니다. 지금도 계속 사용하고 있고요...

곧 알루미늄 밀링의 영역에 도전할 예정입니다.



인조대리석도 잘라서 인레잉도 해보고..

기타 스탠드도 만들어보고...


그 특유의 견고한 프레임 구조 때문에 MaslowCNC나 MPCNC와 달리 아주 빠르게 대부분의 목재들을 컷팅 가능합니다.


<장점>

- 조립이 쉬움 (거의 3d프린터 조립 수준)

- 견고한 프레임 때문에 알루미늄도 밀링이 가능

- 빠름! (전문적인 CNC기기 만큼은 아니지만, 개인용 기기중에서는 속도가 괜찮은편)

- 뽀대남...


<단점>

- 비쌈 (개인이 취미로 사기에는 너무 비쌈... 전 음주운전자에게 후방추돌 교통사고 나고 합의금으로 샀습니다)

- 좁은 작업 영역 (이건 애초에 풀사이즈 CNC가 아니라서 단점이라기보다는 특징일지도)

- 집진에 한계가 있음 (별도의 키트를 사면 훨씬 잘 될수도 있습니다)


쉐이포코는.. 결국 성공적으로 MPCNC를 대체했고... 지금도 너무나도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LowRider CNC

하지만, 쉐이포코로 가구를 만들수는 없는거고...

MaslowCNC가 너무 불안정하고, 부정확한 문제가 있어서... 열심히 영점을 셋팅하거나... 프레임을 금속으로 만들어볼 생각까지 하다가, MPCNC의 사촌인 LowRider CNC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MPCNC랑 같은 제작자가 만든 CNC인데, 특이하게도 Y축 이동을 바퀴로 하는... 신기한 CNC입니다. 그리고 무려 기본 합판 원장 크기용!

원래 MPCNC 제작자가 작은건 MPCNC, 큰건 lowrider 쓰라고 구분한건데... 오히려 MPCNC보다 장점이 많더라구요.

유튜브로 이거 쓰는 사람들 영상을 잘 봐보니... 무려 알루미늄까지 가공이 가능합니다!


자체 하중으로 라우터 플레이트가 목재 위에 비트를 누르는 구조다보니까, 아무래도 좀 더 안정적인것 같았습니다.



얘도 테이블을 만들어야 하는데... 합판 원장을 가공하려면 합판 원장 크기 (1220mm x 2440mm)보다 커야겠죠?



키트 주문하고 (MPCNC랑 비슷한 가격입니다) 열심히 3D 프린터로 파트 뽑고...



쇠파이프로 프레임 짜고... 스테퍼 모터 연결해서 테스트 해보고...



컨트롤 박스 안에 라즈베리파이랑 아두이노, 그리고 릴레이도 집어넣고..



짜잔.. 완성됐습니다.


전에 만들어봤던 스툴의 대형버전인 벤치도 만들어보고요...


<장점>

- 저렴한 가격 (200달러대)

- 광활한 작업 영역 

- 상대적으로 높은 정밀도 (거의 쉐이포코 수준)

- 안정성 (탁상형이기 때문에 MaslowCNC와 달리 작업 영역에 따라서 정밀도가 하락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음)


<단점>

- 수직형이 아니라서 넓은 공간을 차지함 (이건 밑에 목재를 보관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결함... 나무를 세워서 보관하니까 다 휘어버리더라구요.)

- MPCNC와 같은 똑같은 소프트웨어 문제 (덕분에 전 이제 github에 제 grbl 포크 프로젝트도 가지고 있습니다... 버그도 몇개 패치해가면서 써야 하더라구요)

- 집진이 좀 불만족스러움

- 느림 (이건 어쩔수가 없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Lowrider로 몇개 뽑아보고 MaslowCNC는 철거해버렸습니다.

속도는 MaslowCNC랑 거의 비슷하지만, 대신에 정밀도는 훨씬 높더라구요. 스트레스도 훨씬 적게 받고...

이걸로 상업적으로 CNC로 가구를 막 뽑아내는건 불가능하지만, 소규모 생산하는데는 충분해서...

이제 전 LowriderCNC + 쉐이포코 조합으로 공방을 돌리고 있습니다.


Lowrider에는 곧 다이오드 레이저 모듈도 부착해서 원장 사이즈로 레이저 인그레이빙도 해볼 예정입니다.



이렇게 1년동안 여러 취미용 CNC를 만들어보고... 돌려보니까, 확실히 3D 프린팅과는 다른 매력이 있더라구요.

근데 CNC는 쓰는것보다는 만드는게 더 재미있는것 같습니다...

나중에 키트를 쓰는게 아니라, 제가 직접 바닥부터 만들어봐도 재미있을것 같습니다.

3D 프린팅의 발전으로, 일반인도 그 정도는 할수 있겠더라구요. 특히 PLA로 만든 파트들의 강도가 그렇게 강할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December 31, 2020 at 09:33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