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여행 천 개의 불탑 사용기 (2)

[주] 미얀마 여행기입니다. 번호가 붙은 것 외에는순서대로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


세상에서 두 번째 높은 철교 사용기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5498094CLIEN

150원 내고 타는 기차 사용기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5501906CLIEN

잘못 탄 기차 사용기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5505895CLIEN

황금의 언덕 사용기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5517184CLIEN

천 개의 불탑 사용기 (1)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5553705CLIEN


바이크를 몰아 피아짯지 파고다에 들렀다가, 난민타워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길을 따라 달리다보니 사원터로 보이는 폐허가 나타났습니다. 바이크를 세우고 다가가는데, 갑자기 나타난 버스에서 우루루 고등학생 쯤 되어보이는 아이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폐허를 점령하고 저마다 셀피에 열중하더니 다시 우루루 버스를 타고 사라져버렸습니다. 어쩐지 넋놓고 보고 있다가 폐허 맞은편의 노점상에 바지를 사러 갔습니다. 이거 Japanese Quality야. 젊은 주인은 희안한 표현으로 상품의 우수성을 과시했습니다. 하하, 그렇군. 조금은 화려한 무늬의 바지를 골라 비닐봉지에 넣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 바지라면 론지를 입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좁은 길은 다시 넓은 포장도로로 바뀌었습니다. 냥우 방면과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서북쪽으로 향하자 길의 끝에 리조트가 나타났습니다. 고대 유적과 리조트라, 어쨌든 수요가 있는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다보니 눈앞에 거대한 높이의 난민타워가 보였습니다. 생각보다 더 높네. 건물로 들어가 입장권을 샀습니다. 5달러짜리 입장권은 하루 단위로 이용할 수 있었는데, 몇 번이고 들락거려도 된다고 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타워의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한 층 더 올라가니 넓게 트인 전망대가 나왔습니다. 와, 이거 근사하네. 360도 파노라마 뷰를 제공하는 전망대에서는 올드바간 전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열기구를 굳이 타지 않아도 되겠는걸. 잘 찾아왔다는 생각에 뿌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 일몰은 여기서 보면 되겠다, 시간이 남아 일단 숙소로 향했습니다. 잠시 낮잠을 자고 일몰 시간에 맞춰 타워로 돌아갔습니다.

낮에 구입한 티켓을 보여주니 직원이 곧 마감시간이라며 회수해버렸습니다. 여러번 들어와도 된다고 했지, 회수해버린다는 것인지는 몰랐습니다. 인증샷도 안찍었는데. 입맛을 다시며 전망대로 올라갔습니다.

낮에 왔을때는 몇 쌍의 젊은이들 외에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좀 소란스럽군. 무리에 끼고 싶지는 않아서 한걸음 물러나 벤치에 앉아있는데도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일몰언덕에 가서 드론이나 띄워야 하나, 난감해졌습니다.

설상 가상으로 오후까지 맑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습니다. 이래서야 일몰이고 뭐고 글른 것 같았습니다. 열기구는 시즌이 아니어서 못타고, 파고다는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괜찮은 대안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은 이 모양이고, 관광객들은 시끄럽고,  갑자기 우울해졌지만 여행이라는게 그런거니까, 고개를 흔들어 떨쳐버리고 짐을 챙겨 숙소로 향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2번국도에 들어서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먹구름은 어느새 비구름으로 바뀌어있었습니다. 숙소 방향으로는 더 두꺼운 구름이 떠있었습니다. 헐. 길가를 둘러봤지만 비를 피할 곳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두르자 싶어 엑셀러레이터를 당기는데, 계기판에 빨간불이 들어왔습니다. Battery Low. 헐. 배터리 게이지는 20%를 가리키더니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바이크의 속도도 그에 따라 줄어들더니 시속 10km 까지 떨어졌습니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는데, 이대로 멈추면 아주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들 때 쯤. 작은 마을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다행히도 바이크샵이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그래도 맥주는 사야지, 일단 근처의 마트에 들러 맥주를 사고 바이크를 질질 끌고 바이크샵으로 향했습니다. 샵에는 젊은 아가씨가 무료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다가가 배터리가 떨어졌어요.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애걸을 하자 방긋 웃으며 손짓을 하는데, 구세주라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친절하며 전능하신 샵마스터아가씨께서는 내 바이크샵에 전화를 해주셨습니다. 니네 손님 바이크가 말썽이야. 내 바이크샵의 점원은 불과 15분도 안돼서 나타나 새 바이크를 건네주고는 배터리가 떨어진 바이크를 챙겼습니다. 

저걸 어쩌려는거지, 궁금해하는데 선뜻 올라타더니 시속 10km로 길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헐. 저 속도로 간다고? 가다가 배터리가 떨어지면? 비가 올텐데? 황당해서 쳐다보다가, 아, 나도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도 빨리 가야지, 서둘러 출발했지만, 역시나 폭우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2번국도 한가운데서. 



미얀마의 폭우는 대단했습니다. 가시거리 1m 가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흔히 '샤워'라고 부르는 수준의 폭우가 끊임없이 내렸습니다. 스콜이 아니었습니다. 

하이빔을 켜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2번국도를 달리는데,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도로의 가로등이 모두 꺼져버렸습니다. 하하... 간신히 띄엄띄엄 보이던 도로와 숲의 경계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 휴대폰의 네트워크도 먹통이 됐습니다. 구글맵이 작동을 멈췄습니다. 하하... 

억지로 달리다보니 아마도 마을인 것 같은 곳에 도착했지만, 역시나 칠흙같은 어둠속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들어가버렸는지, 도움을 처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비를 피할 처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가야지 생각하고 도로를 달렸지만, 결과적으로 호텔이 있는 마을까지 두시간이 넘게 걸리고, 마을을 네 바퀴나 돈 후에야 호텔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호텔에 들어서자 우와, 이 빗속을? 이라는 표정의 프런트맨이 수건을 건네줬습니다. 하하..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하고 캔맥주를 꺼냈습니다. 참 파란만장하다. 이러고 다녀도 되는걸까. 얼마나 대단한 인연이 되려고 이러나.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맥주를 사오기를 잘했네. 2캔 째를 마시다 문득 잠이 들었습니다.


...(3편에서 계속됩니다.)



November 30, 2020 at 06:37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