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넷플릭스 아이리시맨 감상기

아이리시맨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아이리시맨을 보았습니다. 따라가기 퍽 어려운 영화였지만 보고나서 깊은 여운을 남기더군요. 개인적으로 올해 보았던 영화 중 제일 좋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나름 해석해본 부분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해석은 개인의 몫이나 제가 오독한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미쳐 캐치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함께 이야기해보며 영화를 곰씹어보고 싶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아이리시맨의 주인공은 아일랜드계 미국인입니다. 이 부분을 스콜세지 감독은 꽤 중요하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영화 제목부터 아이리시맨이니까요. 미국 땅에서 아일랜드인들은 같은 영어를 쓰지만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외지인입니다. 주요 고위직은 영국 출신의 개척자들이 이미 싹 쓸어간 상태고, 금융은 유태인들이, 거리는 이탈리아계 마피아가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아일랜드 인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는 못하는 존재였죠. 아일랜드인에게 삶이란 전쟁터나 다름 없을 것입니다.

주인공인 프랭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생존’입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그가 그런 인물이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2차 세계대전의 전쟁터를 통해 그가 삶에 대해 가진 철학은 다 음과 같습니다. ‘될 대로 되라.’ 그는 도덕적 선을 전쟁터에서 이미 버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화는 프랭크가 자신을 변호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 3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렇게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 노년의 프랭크가 (관객)에게 자신의 삶을 나레이션
  • 프랭크가 지미 호파를 제거하기 위해 디트로이트로 가며 중간중간 과거 회상
  • 프랭크가 지미 호파를 만나고 제거하기까지의 회상씬



영화는 초반에 1번에서 2번으로 넘어가면서 과감하게 전체 씬을 타이포그래피로 보여줍니다. ‘자네가 페인트공이라고 들었네’ 대충 이런 구절인데, 원작인 프랭크 시런 회고록의 제목이라고 하더군요. 아마 그 회고록 내용이 2~3번 층이라 이런 식으로 구성한 것 같습니다.

2~3번 씬들은 영화 내내 왔다 갔다하며 좀 혼란을 야기하는데, 의도적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중요한 것은 프랭크(드니로)가 러셀(조 페시)을 만나서 마피아의 히트맨으로써 승승장구하다가 지미 호파(알 파치노)를 만나는 과정이라고 요약하면 될 것 같습니다. 노인들의 과거 회상이 원래 좀 혼란스럽잖아요. 여기 갔다, 저기 갔다, 누가 누구고 이걸 관객이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중요한 것은 중간 중간 타이포그래피로 보여주는 죽음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떤 무시무시한 권세를 가졌거나 누군가에 똘마니거나 상관없이 결국 시간이 흐르면 어떤 경유로든 죽게됩니다.

이 과정에서 프랭크는 정말 ‘될대로 되라’ 스타일로 삽니다. 러셀이 누구를 죽이라고 하면 한치의 의심도, 고뇌도 없이 그냥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이건 내 가족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그런 사람치고는 와이프를 참 쉽게 버리긴 합니다만… 어쨌든 프랭크는 정말 말그대로 프로페셔널하게 임무를 완수하기 때문에 마피아 조직 내에서도 계속 승승장구하다가 트럭 노조의 위원장인 프랭크 호파를 위해서도 일하게 됩니다.


여기서 영화의 드라마가 급격하게 질주합니다. 지미 호파는 프랭크의 인생에서 또 다른 축이 됩니다. 러셀이 어둠이였다면 지미 호파는 빛입니다. 실제로 지미 호파가 그리 깨끗한 사람은 아니지만 어쨌든 겉은 번지르르한 사람이며, 그 차이로 인해 프랭크의 딸인 페기로부터도 사랑받습니다. 사실상 마피아인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프랭크 대신 페기의 양부에 가까운 위치로 보입니다. 그는 페기가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실제가 어쨌던, 그는 남을 돕는 것 처럼 보이니까요. 프랭크도 지미의 신임을 삽니다. 그리고 둘은 꽤 가까워집니다. 여기서 멈췄으면 참 좋았을텐데요.

러셀은 지미 호파를 제거하도록 명령합니다. 이때부터 영화는 최초로 누군가를 죽이기 전 괴로워하는 프랭크 시런을 묘사합니다. 어떤 대사도 없지만 로버트 드니로의 열연으로 그가 꽤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지미 호파를 죽이게 되는데, 영화의 씬이 굉장히 리얼합니다. 그냥 죽음을 관객들 앞에 틱 던져버립니다. 어떤 감정 표출도 없고 어떤 음악도 없습니다. 항상 그랬던 것 처럼 프랭크 시런은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게 일을 처리한 거지요.


지미 호파는 어쨌거나 제거될 운명이였고 (한 씬에서 시런이 아닌 또다른 사람도 호파를 노리는 것처럼 묘사가 되지요) 이 임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시런이 제거될 것이었습니다. 시런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러셀도 말합니다. 자신이 원한게 아니라고, 어쩔 수 없었고 위에서 시켰다고… 근데 도대체 그 위가 누구죠? 영화 내내 한번도 나온 적이 없습니다. 그 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위험한 존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결국 지미 호파의 죽음은 러셀과 프랭크 시런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이죠.

그 결과로 프랭크는 딸인 페기로부터 버림받습니다. 사실상 진짜 아버지나 다름없던건 지미 호파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관계는 결코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프랭크 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한것한 것이 자신의 인생을 변호하지만 그때 딸이 말합니다. 뭐로부터 우리를 지켰냐고 그 위협은 실체가 없습니다.

영화는 이 실체없는 공포로부터 가정을 지키는 과정에 미국을 자꾸 대입시킵니다. 영화 내내 쿠바와 미국의 무장, 충돌 등이 티비 화면에서 절묘하게 나오죠. 아웃사이더인 프랭크 시런의 인생을 미국에 대입해보려는 큰 그림입니다. 미국도 아일랜드계인 프랭크와 비슷하게 외지인들이 만든 근본이 불분명한 나라이니까요.


철저히 생존만을 위해 살아온 그에게 남은 것은 늙어버린 주변인들과 자신의 몸뚱이 뿐입니다. 그마저도 시간에 의해 많이 망가졌죠. 러셀은 포도주스에 빵을 적셔먹고 (이 행위가 뭘 의미하는지는 분명한 것 같아요.) 교회를 가는 등 구원을 위해 발버둥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잊혀짐과 죽음 뿐입니다. 엄청나게 유명했던 지미 호파도 젊은이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시간은 모두에게 죽음과 잊혀짐이라는 판결을 내립니다. 그리고 어떤 파란만장한 삶을 살더라도 그 죽음은 타이포그래피 하나로 요약됩니다. 이 결과를 위해 영혼을 팔 필요가 있었을까요?


영화 말미에 프랭크는 자기 전 간호사에게 문을 열어놔 달라고 말합니다. 열린 문을 사이에 두고 줄곧 청자였던 관객과 프랭크가 마주합니다. 예전에 지미 호퍼도 호텔에서 프랭크와 그 사이의 문을 열어두고 잠들었었습니다. 그건 신뢰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프랭크는 그때처럼 유일하게 그에게 남은 청자인 관객을 신뢰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언젠가 프랭크에게 죽을 줄 몰랐던 호퍼처럼 말입니다.



November 30, 2019 at 03:03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