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기타 디스플레이 산업의 불확실한 미래 : 한중일대 동아시아 국가들의 四國志 (2편)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2601817?po=1&od=T31&sk=&sv=&category=&groupCd=&articlePeriod=default&pt=0CLIEN 1편에서 이어집니다.


저번글에서 작년부터 올해까지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살펴봤다면, 2편에서는 LCD 시장의 전망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LCD, 축소하는 시장


주지하다시피 LCD는 CRT에 이어 2000년대 초중반부터 10년 넘게 디스플레이의 주류를 차지한 기술로서, 2018년 하반기인 현재 시점에서도 OLED를 개척한 삼성을 제외할시 다른 모든 패널 메이커들의 매출은 절대적으로 LCD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스마트폰을 제외하면 IT기기의 시각적 출력을 책임지는 것은 여전히 LCD입니다. 그러나 LCD의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LCD의 수요를 발생시키는 주요 하드웨어를 분류하는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보다 디테일한 글을 위해 애플리케이션별로 나누어서 살펴보지요. 참고로 이 분류는 LGD 실적발표 자료의 기준을 따르고 있습니다.


1순위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건 역시 TV입니다. TV는 다른 모든 HW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사이즈, 화질에 대한 더 높은 요구, 전력 소모나 폼펙터의 제한에서 자유로운 점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 디스플레이 시장의 으뜸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대중화 되어 블랙홀처럼 다른 IT기기의 수요를 빨아들이던 2010년대 중반까지도 9인치 이상의 대형 디스플레이가 그보다 작은 중소형 디스플레이보다 시장 규모가 훨씬 컸습니다. 2017년 4분기에 최초로 두 시장의 규모가 역전되었다는 IHS의 조사결과가 있습니다만, 여전히 LCD TV는 가장 중요한 시장 중 하나입니다.


TV 시장의 수요 전망 자체는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습니다. 물량 기준의 시장 규모는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 그 영향을 받은 여러 기기들처럼 축소를 거듭했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대형화·고해상도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물량 감소를 상당 부분 만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들이 LCD TV 패널의 전망을 가장 부정적으로 점치는 것은 역시 예견된 중국발 공급과잉 때문입니다.


1편에서 적었듯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보즈금에 힘입어 10.5세대의 LCD 공장을 경쟁적으로 증설하고 있으며, 아직 중국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OLED와 달리 LCD 시장에서는 이미 실력을 증명한 바 있습니다. 출하량을 기준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BOE가 이미 전통의 강자 LG디스플레이를 누르고 1위에 올랐고, BOE의 증설에 따른 후폭풍으로 불과 1년여 만에 LCD 가격이 급락, 세계 주요 패널 메이커들의 이익률 역시 속절없이 추락했지요.


가장 큰 문제는 중국 기업들의 LCD 투자가 수요-공급 사이클과 시장원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 패널공장을 짓고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 여러 성(省)에 해당하는 지방정부의 직접적인 투자비용 공동 부담은 물론이고, 중앙 공산당으로부터도 다양한 유무형의 지원을 받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쉽게 말해 LCD TV 패널 시장이 이미 기술적인 차별성이 모호해진 상황에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비정상적인 보조금을 투하하고 있으니 그 혜택을 받기 어려운 비중국계 패널 메이커들로서는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의사결정체계가 단일화 되지 않은 무분별한 보조금은 중국 자신들에게도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LCD 증설 레이스에 뛰어든 것은 BOE 혼자가 아닌데, 올해 들어 LCD 가격이 폭락한 것은 사실상 BOE의 신규공장 탓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시황이 바닥을 치던 2분기에는 패널 가격이 거의 현금원가에 근접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지만 중국의 각 지역마다 19년, 20년까지 BOE 못지 않은 대규모 LCD 공장의 가동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즉 LCD TV 패널 시장의 공급과잉은 중국조차도 통제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으며, 이로 인해 상장사인 BOE의 수익과 주가는 (LGD만큼은 아니겠지만)극도의 부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부 보조금발 치킨게임을 주도하는 중국 기업들마저 이 지경이니, 비중국계 기업들의 사정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시장조사기관 IHS는 2021년까지 대형 LCD 패널 시장의 공급과잉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즉 18년의 악몽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그건 바로 삼성과 LG의 추가적인 LCD라인 셧다운입니다. 1편에서 설명했듯 작년의 LCD 호황은 SDC가 L7-1라인을 OLED로의 전환투자를 위해 조기폐쇄한 덕분이었지요. 만약 SDC나 LGD가 한국에서 가동하고 있는 7~8세대 라인의 공급을 줄인다면 일시적으로 시황은 회복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SDC는 이어서 설명하겠지만 추가로 OLED에 투자할 유인이 거의 없으며, LGD는 삼성과 달리 OLED 매출 비중이 미미한 탓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Cash Cow인 최신 LCD 라인의 가동을 중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공급과잉이 악화될 것은 분명한지라 OLED에서 앞서고 있는 한국의 양대 패널 메이커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환투자를 진행할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입니다.


TV 다음으로 살펴볼 시장은 노트북·모니터·태블릿의 IT패널입니다. 사실 이 시장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클리앙 유저라면 대부분 아시겠지만 스마트폰의 성장에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곳으로, 공급이 문제가 되는 TV와는 달리 역성장이 계속되는 등 수요 자체가 극히 부진합니다. 기기의 특성상 질적으로 유의미한 향상이 이루어지고 있지도 않고요. 그나마 태블릿은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한때 각광받는 시장이었으나 패블릿과 노트북 사이의 애매한 포지션으로 인해 지금은 노트북보다 더 부정적인 꼬리표를 달고 있는 상태입니다. 


다만 게이밍 모니터, 4K 노트북 등 고사양의 하이엔드 IT패널은 니치 마켓으로서 기능하고 있으나, 비교적 회사의 규모가 작고 기존에 해당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던 대만계 제조사들을 제외하면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3편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다뤄보겠습니다.


마지막은 예상하셨듯 스마트폰 시장입니다. 수요는 비교적 나쁘지 않으나 공급과잉이 심각한 TV, 시장의 수요 자체가 크게 부진한 IT패널과는 또 다르게, 스마트폰용 LCD시장은 경쟁자에 의해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마찬가지로, 장기적인 전망은 크게 암울합니다.


스마트폰 패널 시장에서 OLED가 등장한 것은 꽤나 오래된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OLED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삼성이 최초로 상용화 시킨 이후로 줄곧 해당 패널을 자사의 주력 스마트폰에 탑재해 왔으니까요. 여러 차례의 위기와 굴곡이 있었지만 삼성의 갤럭시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출하량 기준 1위, 매출 기준 2위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으며, 덕분에 삼성디스플레이가 찍어내서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에 달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스마트폰 패널 시장에서 OLED의 비중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주류는 여전히 LCD였습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15~2016년입니다. 이 즈음에는 이미 삼성과 애플을 제외하면 중국계 제조사들이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했는데, 15년부터 오포, 비보를 필두로 여러 중국 제조사들이 OLED를 적극적으로 채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7년에는 스마트폰 시장의 절대적인 강자 애플이 아이폰 10주년 기념 모델에 해당되는 아이폰 X에 최고사양 OLED를 선택하며 화룡점정을 찍습니다. 17년에 이르러서는 거의 모든 스마트폰 제조사가 플래그십은 물론이고 하이엔드급 라인업에도 OLED를 채택하며,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LCD의 입지는 한없이 작아지고 맙니다.



결국 올해말이나 내년에는 매출 기준으로 OLED가 LCD를 추월할 것이 거의 확실하며, 특히 높은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고사양 시장에서의 지배력이 완전히 넘어간 터라 스마트폰용 LCD 시장의 미래는 TV나 IT패널보다도 한층 더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September 30, 2018 at 07:25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