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생활문화 아빠 육아휴직 7개월 후기

안녕하세요. 17개월 되어가는 아들 집에서 키우고 있는 30대 중반 아빠입니다.

애기가 한 10개월 쯤 되었을 때인 지난 1월부터 회사에 1년간 육아휴직을 내었고 이제 절반을 지나 7개월 차로 접어들었습니다.

남자인 제가 육아 휴직을 왜 하게 되었는지, 육아휴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간단히 그간의 소회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1. 육아 휴직을 하게된 이유


원래 결혼을 하면서 부터 아이의 주 양육자는 할아버지 할머니나 또는 베이비시터와 같은 다른 사람보다는 부모 스스로가 되어야된다고 와이프와 공감대를 형성했었습니다. 저희 둘다 신혼 초에 맞벌이를 했지만 아이를 낳는다거나 특히나 애기가 어릴때는 외벌이로 전환해서 한명이 애를 봐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흔히들 부모님 찬스 써서 애를 맡긴다고 하는데 저희는 경기도에 동떨어 거주하고 있고 본가와 처가 부모님 모두 부산에 사시면서 하시는 일들이 있어 선뜻 부모님께 양육을 부탁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어린이집이나 가사도우미를 활용하는 방법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신생아, 영아 시기에는 부모와의 애착관계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아 만약 한다고 해도 그 시기를 조금 늦추는 방향으로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두 돌이 될 때까지는 부모가 책임을 지는걸로.


그래서 작년에 출산을 하고나서 와이프가 1년간 일을 쉬며 애를 봤고 올해는 제가 보기로 한 것입니다.

 

2. 회사에서의 저항. 남자 육아휴직을 바라보는 시선.


휴직하기 두어달 전쯤 부터 부서 내부적으로 휴직하겠다 말씀을 드리고 부서장께도 알려드렸습니다. 예상한 대로 반응은 그렇게 좋지가 않았습니다. '애는 엄마가 봐야한다', '어린이집에 맡겨라', '가사도우미를 쓰지 그러냐' , '부모님께 맡겨라', '다른 꿍꿍이가 있는것 아니냐' 등등 일단 반대하는 의견을 많이들었습니다.


사실 저희 부서에서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는건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옆 부서들에서는 몇명 있긴 했었는데 대부분 짧게 3개월 정도, 그리고 유치원이나 초등학생들 통원 통학관련한 문제로 휴직을 하는것이었지 저처럼 갓난애기 보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잘 할수 있는지 의심의 눈총을 많이 받게되었습니다. 육아휴직을 핑계로 자기계발을 한다거나 이직 생각을 하거나 그렇게 보셨겠죠.


뭐.. 그분들의 생각이 완전 틀린건 아니었습니다.ㅋㅋ 저도 실은 육아휴직하면서 짬짬이 이런저런 공부도 해보고 앞날을 준비해볼 그런 생각을 가졌던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3. 육아 일상


그런거 꿈꿀 시간이 없습니다. 정말 힘들고 정말 지겹고 정말 지치고 정말 외롭습니다.


세상의 어머니, 특히나 저를 키우신 어머니가 정말 존경스럽고 작년 한 해 동안 혼자 애기를 본 와이프에게도 정말 고맙고 존경스럽습니다.

육아휴직 이전에 작년에도 틈틈히 주말에는 와이프 밖에 나가 쉬도록 하고 제가 애를 많이 보도록 신경을 쓰긴 했지만 1주일 내내 이어지는 독박육아의 난이도는 주말에 잠시 보는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나도 가끔씩 혼자서 애 본다.' ,  '집에 혼자 있으면서 애 보고 집안 정리하는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엄살이냐' 이런 말들을 많이 들었는데

매일매일 육아생활을 한다는건 그건 마치 군대로 치면 2년 현역병으로 생활 하는것과 4박5일 병영체험을 비교하는것과 같다고 느껴집니다.

 

하루나 이틀정도는 혼자서 애 보는것 굉장히 쉽습니다. 근데 그 생활이 1주일 2주일 한 달이 넘어 계속 이어지면 정말 힘든건 둘째치고 너무 외로워집니다. 특히나 지금 저희 애처럼 막 돌 지나고 걸음마를 떼고 아직 말도 못하는 그런 상황에서는 애랑 대화는 안되지, 잠시 한눈팔면 다치지, 심기 불편하면 빽빽 울기 때문에 쉬지않고 놀아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낮잠 재워줘야되고.. 쉴틈이 없습니다.


애 혼자서 놀거나 자게 두고 저혼자 여유롭게 자기계발도 하고 독서도 하고 영화도 보는 그런 생활을 꿈꿨었지만, 현실은 그런 상황이 닥치면 저도 쉬기 바쁩니다.. 못다잔 잠을 보충하거나 머리 식히기 위한 스마트폰으로 SNS, 인터넷 글들 눈팅.. 그리고 그 여유를 채 다 만끽하기도 전에 아이의 앙탈은 시작되죠.


실질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밤에 잠들고 육아퇴근을 하고난 9시~10시쯤 부터인데요, 회사 다닐때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는것과 비슷하네요. 회사에선 이래저래 눈치보며 월급루팡짓이라도 할 수 있지만.. 육아루팡짓은 할 수가 없네요..ㅠ

 

4. 외로움과의 싸움

말씀드린대로 타지에 홀로 떨어져 사느라 주위에 친구들이 거의 없습니다. 사실의 제가 그렇게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라 친구가 많이 없어서 그렇기도 한데, 그래도 연락할 만한 친구들은 대부분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낮에는 대화를 할 상대가 없습니다. 제 앞에서 옹알대고 있는 작은 생명체 말고는.


하루종일 단방향 대화 밖에 할 수가 없는데 이게 몇달 동안 계속되다보니 뭔가 서글퍼지기도 하고 울적하고 그렇네요.. 많은 여성분들이 육아를 하면서 우울증을 겪는다던데 백분 공감합니다.

 

졸린다고 빽빽 울면서 재워달라는 애를 두고 눞혀도 보고 안아도 보고 기저귀를 갈아보기도 하고 업어도 보고.. 그렇게 1시간 이상 길게는 2시간 가까이 다른 일 전혀 하지 못하고 달래가며 재웠는데 30분도 안자고 일어나 다시 울거나,

그렇게 우는 애를 옆에 두고 밥 먹일 준비하고 요리하고, 또 막상 먹이면 도리도리 하면서 거부하고 손으로 쳐내고 뱉어내고.. 그런 상황을 매일같이 경험하다보니 저 자신도 분노조절장애가 오는듯 합니다.. (뉴스에 나오는 어린이집에서 애 학대하는 사건들.. 왜 그런지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제 애한테도 화가 그렇게 나는데 다른 애들에게는 오죽하겠습니까ㅠㅠ)

 

5. 하지만 버틸 수 있는 이유


하루하루 미묘하게 성장해 나가는 아이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그 달라진 모습에 감탄을 하게 되고 미소짓게 됩니다. 육아휴직을 


막 시작했던 1월에는 애가 앉거나 아니면 뭔가 잡고 일어서는 그 정도 수준이었는데,


어느날 잡고 옆걸음으로 걷더니 잡지 않고도 설 수 있고 마침내 혼자서 발걸음을 떼는 순간.


처음에는 의미없는 옹알이 소리만 내다가 어느날 '엄마엄마 맘마 빠빠' 소리를 내는 순간.


장난감과 그림책을 그저 만지면서 놀기만 하다가 이제는 책을 저에게 들고와서 읽어달라고 내밀기도 하고.


분유와 이유식만 먹던 아이가 이제는 밥도 먹고 제가 만든 반찬을 맛있게 먹어주기도 하고.

 

이 모든 순간들을 실시간으로 관찰 할 수 있어서 그걸로 외로움과 분노를 이겨낼수 있는것 같습니다. 

 

 

혹시 육아휴직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저는 할 수 있으면 하는게 좋다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 물론 각자의 상황들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애가 몇살인지, 경제적 여건은 어떠한지 등등..

여러가지 산술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휴직을 결정하는게 결코 쉬운일은 아니지만 아이 인생에 단 한번 있을 기회, 특히 돌 남짓한 시기에 처음 말을 배우고 일어서는 이 과정을 지켜보는것은 다른 무엇으로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에 정말 추천하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July 31, 2018 at 03:33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