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도서 김찬 그리고 도개손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원희복


올해 들어 처음 제대로 읽은 책입니다.
2015년 여름에 산 책인데 이제야 읽게 되었네요.
부부 항일혁명가인 조선인 김찬과 중국인 도개손의 평전입니다.
두 사람은 민족이 다르고 태어난 날과 곳이 달랐지만, 같은 뜻을 품고 짧은 일생을 바쳤으며, 같은 곳에서 같은 날 죽었습니다.


김찬은 1911년에 태어나서 중학생 때부터 항일운동을 시작하여 중국과 조선을 넘나들며 활동했고, 한 번 검거되어 45일간 고문을 견디고 1년 6개월을 복역한 후 다시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가 1939년에 봄에 죽었습니다.
도개손은 1912년에 태어나서 역시 일찌감치 항일운동에 뛰어들었고 북경에서 김찬과 만나 사귀면서 함께 항일투쟁을 계속했습니다. 1935년 무렵에 김찬과 결혼해서 1남1녀를 낳았고 김찬과 함께 죽었습니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은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사와 조선공산당사를 빼면 매우 빈약해지고, 올바로 서술할 수 없는데도, 이제까지 남과 북에서 모두 배척해왔습니다. 그래서 항일운동에 헌신했던 수많은 사람과 이들이 걸었던 길을 우리는 알지 못했고 항일운동사 자체를 보잘것없는 역사로 무의식적으로 여겨왔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에서는 김찬과 도개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엮고 있습니다.
이동휘, 조봉암, 김단야, 박헌영, 이재유, 이현상 등등 적어도 이름은 들어봤을 인물들이 주요한 사건과 함께 나옵니다.


책날개에는 님 웨일스의 『아리랑』을 능가하는 감동이라고 적혀 있지만, 내용만 보면 솔직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 책은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개개인의 활동, 검거, 고문, 투옥, 활동(누군가는 변절),... 헤아릴 수 없는 고난과 실패의 단조로운 나열과 서술입니다.


아리랑은 님 웨일스가 1937년 연안에서 김산과 직접 만나면서 김산의 이야기를 들으며 적은 것이기에 김산이 겪은 역사적 사건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잊혀진 인물을 후대의 저자가 사료와 증언을 통해 75년 뒤에 썼기에 영화나 소설 같은 감동을 줄 수 없지요.


그러나 아리랑에서 읽은 어마어마한 비극과 슬픔, 개개인의 고뇌와 갈등, 고통 등이 김찬과 도개손 그리고 그 주변에도 있었으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조선의용군 출신으로서 후에 중국공산당 요직에 오른 이가 아리랑의 김산을 깎아내리는 언급이 짧게 나오는데요(이 이야기는 『아리랑 그후』에 자세히 나옵니다), 아무런 공헌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공헌이 있는지 없는지는 둘째 치고라도, 그 시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끝까지 신념을 지키면서 싸운 사실만으로도 넘치는 대접과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싸우다 죽거나 모진 고문을 받아 목숨을 잃어 이름만 기록된 사람들도 김찬과 김산처럼 똑같이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름조차 기록에 남지 못한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말이지요.


김찬과 도개손, 그리고 김산은 목숨을 걸고 헌신했던 중국공산당에 의해 연안에서 처형됐습니다.
김찬과 도개손의 아들과 도개손의 가족이 애쓴 끝에 두 사람은 1982년에 중국에서 복권되었습니다.
김산도 아들을 남겨 그 아들이 아버지의 명예 회복에 힘썼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책은 항일운동을 벌인 수많은 사람들 중 두 명을 다뤘을 뿐이지만, 처절한 역사와 당시 운동가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됩니다. 읽은 지 오래된 일제하 역사를 다시 살펴봐야겠다는 다짐도 들게 했습니다.





May 31, 2018 at 07:56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