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시술/수술기 의식의 흐름대로 남편이 써보는 출산 경험기 (긴글주의)

안녕하세요.


얼마전 딸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직 아빠가 되었다는 실감조차 나지 않지만  당시 경험한 것을 잊지 않고자 대략적으로 나마 적어봅니다.


저는 아내가 출산하기 전 후로 휴가를 내고 오로지 출산과 회복을 위해 아내 옆에 붙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말 딸아이가 태어나 현재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히 집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일본에 거주중이라 산후조리원이 없어서 출산 후 5일간 입원후에 바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입원 1일차


40주가 꽉 차도록 아이가 나올 기미가 안보여서 병원과 상담 후 입원을 결정하였습니다.

원래는 41주차 정도까지는 딱히 조치를 안하고 기다리는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일본은 연말연시에 연휴가 있는지라 비상시에 대처가 늦어질것을 고려해 입원해서 유도분만을 하게 됐습니다.

정확히 이게 유도분만이 맞는지, 한국과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입원수속을 하고 조금 이따가 채혈 및 소변검사, 그리고 골반 확인을 위한 엑스레이 검사 등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 당직 의사에게 출산 수술과 전후 처치에 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아내가 153cm정도로 체격이 작은데, 골반 사이즈를 보니 자연분만은 아슬아슬하다고 하더군요.

일단 불가능한 골반크기는 아니라고 하니 처음 계획했던대로 자연분만을 선택했습니다.


초음파 및 자궁경부를 보니 태아는 태어나기위해 밑으로 내려올 생각이 없고,

자궁도 아직 전혀 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후쯤 되어서 자궁경부에 라미나리아 막대 18개를 삽입하는 시술을 받습니다.


라미나리아는 자궁이 열리지 않았을때 삽입하는 면봉정도 크기의,

수분으로 점점 부풀어오르는 막대인데 보통 10~20개 정도 삽입한다고 합니다.


아내가 시술받기 위해 기다리는동안 다른 임산부가 먼저 시술받았는데 비명을 지릅니다..

아내와 기다리면서 조금씩 초조해지더군요.

조금 기다리니 아내 차례가 되어서 들어갔는데 조용~히 시술받고 나오더군요.

이물감은 상당히 있는데 그렇게 아픈건 아니라길래 그렇구나 했습니다.


아내와 밥 먹고 좀 있다보니 면회시간이 끝났네요.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저희가 간곳은 14:00~20:00 외엔 보호자도 들어올수 없게 해놨더라구요.

아내가 걱정됐지만 하는 수 없이 병원을 빠져나옵니다.



**입원 2일차


아침 8시쯤에 아내에게서 촉진제를 맞기 위해 진통실로 이동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참고로 이 병원은 진통 하는 곳과 입원실이 같은층에 있는데

입원실은 1인실부터 6인실까지, 진통실은 개인 침대가 커튼으로 나뉘어진 좀 넓은 방 같은 느낌입니다.

진통실은 면회시간과 상관없이 보호자(남편) 한명만 들어와서 같이 지낼수 있습니다.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가 모두 이곳에 모여서 고통을 참으며 비명을 지르는데

제가 9시쯤 도착했을때에는 저희를 포함해 세 쌍의 부부가 있었고, 마침 아내는 삽입했던 라미나리아를 제거하는 시술을 받고있었습니다.

이때 자궁입구가 3cm 정도 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8시 부터 이미 링거로 된 촉진제(자궁 수축제) 투여를 시작했더라구요.

유독 지쳐보이는 아내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라미나리아 때문에 진통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밤새 1~3시간 간격으로 진통이 있었던지라 잠을 한숨도 못잤다고 합니다.

면회시간때문에 어쩔수 없었지만 아내 혼자 놔두고 집에서 자고 온게 미안해지더라는..


아무튼 그렇게 인내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건너편 침대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중국인 부부가 먼저 와서 진통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아팠는지 몇시간 동안 비명을 지르다 지르다 제발 수술(제왕절개) 해달라고 사정을 하더라구요.;;

남편분은 서툰 일본어로 아내좀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의사 및 조산사 분들은 다들 괜찮으니까 걱정말라고 합니다.


결국엔 그렇게 고통스러워 하다가 자연분만(!) 하고 나갔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라미나리아를 아내 바로 전에 시술받은 비명지른 그분이더라구요.

아무리 아파도 결국엔 자연분만을 하는구나... 인간이란 대단하구나 싶었던 때였습니다.


여차저차 그렇게 수시간 동안 아내 배에 센서를 달고 출산때까지 모니터링을 하게 되는데,

하나는 태아의 심박수, 또하나는 진통을 0부터 99까지의 수치로 알려줍니다.

촉진제를 맞아갈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진통은 점점 크게 빈번하게 오는데

나중에는 아내가 비명을 지르기 전에도 진통 수치를 보고 이미 허리를 마사지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후쯤 가서는 양수가 터지고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됐는데,

저는 아내가 이렇게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아침부터 이미 힘이 빠진 아내였는데 이 상태로 아파하는걸 보며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하더라구요.


아침부터 등 및 허리를 14시간 가량 토닥이거나 주물러주거나 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마사지를 너무 해서 이것도 아프다고 그러더군요.

(진통시 오는 아픔보다야 낫다고는 하더라는)


그렇게 시간이 지나도록 태아는 아직 밑으로 내려오질 않아서 촉진제 양을 늘리게 됩니다.

물론 진통도 점점 심해지구요.


두세시간 간격으로 자궁이 열렸는지 검진을 받는데 5cm 7cm 순조롭게 가는게 했더니 그후로는 좀 더디더라구요.

(출산을 위해서는 자궁이 10cm가 열려야 합니다.)


이때가 16시 정도 됐는데, 18시면 자궁이 다 열리겠지.. 20시면 되겠지.. 했는데도 좀처럼 순조롭지가 못했습니다.

아내는 비명을 지르다 지쳐서 신음소리만 겨우 낼 정도 였는데,

진통을 경감하고자 중간중간에 이것저것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 기댈수 있는 흔들의자, 테니스공, 호흡조절...


그렇게 인고의 시간이 흐르고, 앞서 세 쌍의 부부가 출산하고 나갔고

시간은 22시.. 남은건 저희 뿐이더라구요.

다시 검진을 하니 이제서야(!) 자궁이 다 열렸다고 해서 분만을 위해 분만실로 이동했습니다.

진통이 오는 와중에 지칠대로 지친 아내는 제대로 걷기가 힘들었던지라 그 몇미터 이동하는게 정말 힘들었습니다.


부축을 하고 겨우 걸어서 분만대에 오르는 순간 제 눈에서 눈물이 핑 나더라구요.

아침 8시부터 14시간 가량.. 진통하면서 참아온 순간의 결말이.. 아이를 볼 순간이 다가왔다는 생각에..

이렇게 참아준 아내에게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에..


밤 10시에 시작된 분만이라 대부분 퇴근하고 담당 조산사만 계속 옆에 붙어있었는데

곧바로 연락받은 간호사 및 의사 분들이 들어오고 분만은 진행됐습니다.


처음엔 호흡 조절을 하며 힘을 주다가 곧 나오겠다 싶으면 국소마취와 회음부 절개를 합니다.

보통 낳다가 살이 찢어지는사람이 많은데, 절개를 하는편이 상처가 깔끔하게 아문다고 그러네요.

그리고 계속해서 힘을 주는데 무작정 힘을주는게 아니라 진통이 오는(자궁이 수축하는) 타이밍에만 힘을 줍니다.

진통이 없을때는 수분섭취하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저는 옆에 서서 줄곧 땀을 닦아주거나 격려의 말을 건네거나 했습니다.

아내의 손은 분만대의 손잡이를 잡고있던지라 손은 못잡아줬네요;

제 머리가 뜯기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분만대에 오른지 한시간이 다 되어서야 아이가 나왔는데,

쉽사리 나오지 않아서 아이 머리에 대고 흡착하는.. 쉽게 말해서 뚫어뻥 비스무리 한걸로 도움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머리가 약간 길쭉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다 들어간다고 하더라구요.


아이가 나오고 몇 초가 흘렀을까.. 우는 소리가 안나서 아내가 "아이 울음소리가 안들리는데 괜찮은가요?" 했는데,

이런저런 처치를 하면서 금방 울음소리가 터지더라구요! 3050그램으로 건강히 태어났습니다.

순간 우리 부부는 둘다 안도의 한숨을..


한국은 보통 남편에게 탯줄 자르게 해준다는데, 여긴 그런게 없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의사가 주도합니다.

그리고 이 병원에는 무통주사가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무사히 출산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진통의 통증을 100으로 잡는다면 출산의 통증은 얼마정도 되냐고 아내에게 물어보니,

한.. 1000정도? 라고 하더라는..ㄷㄷ


그렇게 무사히 애기가 나오고 호흡이나 혈중산소 농도 등을 보기 위해 잠시 다른곳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는 2차 분만이라고 하는 태반을 배출하는 과정을 겪는데,

아기가 나오는 고통에는 못미치지만 그래도 상당히 아프다고 하네요.

조산사 분이 태반 보겠냐고(!?) 하길래 보겠다고 해서 봤습니다.


10개월간 아기와 이어져있던 태반과 탯줄을 보면 또다른 감동이 있지 않을까 해서요.

보기에는 검고 붉은 핏덩이 조직 입니다.. 비위 약하신 분들은 보기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이어서 아내는 절개한 곳의 봉합수술을 받고 여기저기 흘린 피를 닦고 합니다.

그리고 처치를 끝낸 아기를 데려와서 보여주는데 많이 울지도 않고 얌전하더라구요.

옆에서 조산사 분이 젖 한번 물려보겠냐고 하길래 벌써요? 했더니

태반이 떨어져나가면 호르몬 영향으로 바로 젖이 나온다고 하더라구요.

정말 아주 조금이지만 젖이 나오길래 바로 아기에게 물려줬더니 본능적으로 빨더라는.. ㅠㅠ

다시한번 인간은 참 대단하구나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아이와 엄마 둘다에게요.


혹시모를 상황(출혈 등)을 위해서 출산후 두시간 가량은 분만대에서 몸상태를 보며 대기하게 되는데,

그 시간동안 애타게 소식을 기다렸을 가족에게 전화해서 출산을 알렸습니다.

23시가 넘은 시간에도 다들 잠도 못자고 기다렸을걸 생각하면 출산은 정말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고, 아기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호흡이 아직 불안정할 수 있어서

심박 및 호흡등을 측정하는 모니터를 부착하여 간호사가 데려가고

저희 부부는 둘이서 병실로 돌아갔습니다. (이때부터 1인실로 변경)


병실로 들어와서는 수고했다고 안아주고

진통하느랴 밥도 거의 못먹은 아내와 둘이서 2시가 다되어서 같이 밥먹었습니다.

1인실임에도 불구하고 면회시간 룰은 예외가 없었던지라 또다시 아내를 홀로 놔두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집에와서 씻고 잠을 청하려고 하니, 모니터에서 나던 태아의 심박소리와

아내의 고통스러워 하던 비명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더라구요.

결국 잠은 거의 못자고 다음날 병원을 찾았습니다.



**입원 3일차


병실에 들어가니 아이가 아내와 같이 있더라구요!

애기용 투명 바구니 같은곳에 눞혀져 있는데, 팔은 W모양으로, 다리는 M자 모양으로 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아기의 상징이라고 하네요.ㅎㅎ


심박 모니터는 하루 정도 더 붙여놓고 모니터링 한다고 하는데 오늘부터 모자동실 가능하다고 합니다.

아기는 거의 대부분을 자고 두세시간에 한번씩 모유 혹은 분유를 먹이는데 먹다가도 금방 잠에 듭니다.


그리고 응가를 했는데 처음 몇번은 점성이 있는 녹색의 태변을 배출합니다.

또, 여자 아기의 경우 기저귀에 핏방울이 맺힐 수 있는데, 엄마의 호르몬을 이어받아서 하는 생리라고 합니다!

신생아 월경 이라고 하네요. 이것도 처음 몇번만 하는듯.


아내는 몸이 이곳저곳 아픈데 아직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고 목욕도 못하고

아이는 봐야하고.. 산후조리원이 절실했습니다.



**입원 4~5일차


아침에 일어나니 아내에게 메시지가 와있습니다.

아기가 머스타드같은 응가를 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머스타드에 흰 알갱이(소화 못한 지방 알갱이라고 하던)가 들어간 듯한 모양의 응가를 하게 되는데,

꿉꿉한 냄새는 있지만 어른의 그것..과는 다르게 전혀 더러운 느낌이 안듭니다.

(내 아이라서 그런걸지도 모르지만)


신생아의 경우 기저귀는 하루에 20번 정도 갈게 되는데

한달이 지난 지금도 응가 쓰레기 봉투 텨져욧! 하고 있습니다.

잘먹고 잘 싸니 좋습니다만.. ㅎㅎ


제가 계속 집에 왔다갔다 하며 필요한 물건 가져오고 갖다놓고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는 케어를 한다고는 했는데,

아내는 모자동실 하느랴 밤새 모유&분유 수유, 기저귀, 징징거림에 대응하느랴 여전히 한숨도 못자고 많이 지쳐 보였습니다.



**입원 6일차, 이후


퇴원하는날, 잠깐이지만 도쿄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우리 아기를 하늘이 축복하는건가~ 싶다가도

아기 데리고 집에 가야하는데 이렇게 추워서 어쩌지 해서 택시 불러서 애기 꽁꽁 싸매고 데려왔습니다.

6일간 계속 따뜻한 곳에 있다가 나온 아내는 엄청 춥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그정도 까지는 아니었는데, 출산떄문에 여러모로 몸에 영향이 있는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집에 와서 아기를 아기침대에 내려 놓으니 말못할 감동이..

가족이 늘었구나 하며 이때가 약간이나마 아빠가 되었다고 실감할 떄였습니다.


아기는 비교적 얌전하고 잘 울지도 않고.. 울어도 한번 응애 하고 끝인..



이때부터 뭐.. 가족 휴대폰엔 온통 아기 사진뿐인 나날입니다.


한달이 지난 지금 3.0kg -> 4.1kg으로 정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목도 이리저리 움직이려고 하고 몸에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손발은 어쩜 그렇게 작고 귀여운지, 통채로 입에 넣고 쭙쭙 하고 싶은 느낌..ㅎㅎ



아내는 많이 회복했지만 아직 군데군데 뼈마디가 아프다고 합니다.

그나마 장모님이 출산 전부터 잠시 와계셔서 많이 도와주시고 계시지만

날씨도 춥고 아이도 수시로 안아서 젖물리고 하다보니 아파도 쉴 틈이 없네요.


이제부터는 아기 보다는 아내 회복에 좀더 집중 하려고 합니다.

아내가 출산 전부터 하던 얘기가,

아기가 태어나면 자신한테 오던 애정이 아기한테 전부 가버릴것 같아서 두렵다고..

물론 그럴리는 없지만 아기만을 위한 생활이 되어선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January 31, 2018 at 08:47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