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스트버스터즈 2016 감상기 (부제 : B급 영화 마침내 C급이 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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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명화극장에서 즐겨보던

고스트버스터즈 리메이크판을 오늘 봤습니다. 

 

한줄평부터 쓰자면

"원작 스토리의 장점은 몽땅 잃고, SNL식 개그만 충만한 싸구려 페미니즘 & 추억팔이 영화"라 평하겠습니다.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에 살짝 기대했습니다.

SNL(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이 아닌 미국 NBC의 SNL입니다)의 간판 여성 코메디언들이 모두 나오기 때문이죠.

 

SNL의 통렬한 정치풍자쇼에 열광하는 저같은 사람은 

뭔가 엄청난 영화가 나올 줄 알고 크게 기대했습니다.

고스트버스터즈에 살벌한 정치풍자가 들어갈 줄 알았기 때문이죠.

 

허나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원작에 페미니즘이란 소스를 첨가하더군요. 그것도 SNL식의 저질 페미니즘... 

 

원작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확실히 수동적이었습니다. 

고스트버스터즈는 남자들이 주도적으로 활약하고,

여자는 그저 구해주어야 하는 대상 혹은 접수처에서 전화나 받는 비서역할에 그칩니다.  

유령을 퇴치하고 세계를 구하는 건 전부 남자들의 몫이죠. 

 

만약 감독의 의도가 원작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뒤집어 놓는 것이었다면 

상당히 좋은 영화가 될 뻔했습니다. 페미니즘을 제대로 표현했다면 말이죠. 

 

그러나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의 공부가 부족한 탓에  

그저 남자들을 죄다 멍청하고 무능한 존재로만 그려 놓았습니다. 

 

'그래, 원작에서 여자는 전화만 받았지? 이번 리메이크판에는 남자 니들이 한번 당해봐라'란 식이더군요. 

 

영화 속 남자들은 얼마나 멍청한지 전화도 제대로 못 받습니다.

중국집 음식 배달도 제대로 못 합니다. 

시도 엉망으로 다스립니다. 

도무지 지적인 대화가 가능한 대상이 아닙니다. 

 

 

여자들은 그저 남성기에 총을 쏘고 그들의 거세를 즐기며 환호할 뿐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깊은 한숨만 나옵니다.  

 

감독은 여자가 지배하고, 남자가 피지배관계에 놓이면 그게 페미니즘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문득 예전에 한국형 페미니스트를 자처하신 전여옥 선생의 명언이 떠오릅니다. 

 

'여성들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

 

이 영화에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본래 페미니즘은 전통적인 성역할의 지배-피지배 관계를 비판하고 있죠.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백인-흑인', '자본가-노동자'뿐만 아니라

'남성-여성'의 성역할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페미니즘은 여자들이 테러리스트가 돼

그동안 그녀들을 지배하던 남자들을 싸잡아 죽여야 한다는 그런 과격한 사상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이 사회에 뿌리박힌 모든 지배-피지배의 관계를 없애자는 평화로운 사상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페미니즘을 표현한답시고

지배-피지배관계를 단순히 역으로 바꿔놨습니다.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비록 남자들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원작 고스트버스터즈는 

유령을 믿지 않는 주류사회에 반항하는 마이너들의 모습이 유쾌하게 표현됩니다. 

 

초반에 이 유령 오타쿠들은 자신들이 고용한

비서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고 종종 무시를 당하죠. 

그렇게 괄시받던(?) 비주류 인물들이

종내에는 주류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통쾌하게 해결해 나갑니다. 

원작의 이런 재미는 대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스토리는 개연성 없이 흘러가고

시도 때도 없이 SNL 코메디언들의 드립질과 개인기만이 난무합니다. 

그것도 미국인들만 이해하는 유머코드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유령 잡는 장치를 시연하다가 박살내 놓고

"이거 전부 미시간으로 사라졌네?" 라고 말하면 알아 듣고 웃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미시간주가 파산했다는 사실을 모르면 공감하기 힘든 개그일 겁니다.

 

영화 내내 SNL의 개그필름 보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더군요. 

SNL이나 스탠딩 코메디에 익숙한 미국인이라면 이해하겠죠. 그럼 그 외의 사람들은? 

 

원작은 이보다는 좀 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개그코드로 흘러갔는데

그걸 잃어버린 듯 해서 많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그런 개인기와 드립질이 가끔 통해서 소소한 웃음을 주긴 합니다. 

원작의 배우들이 까메오로 출연해서 아련한 추억팔이를 선사하고요. 

 

결론을 내리자면 이 영화는 다음과 같은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1. 영화의 행간이 신경쓰이지 않는 분 

2. 긴 버전의 SNL을 보고 싶다는 분 

3. 어떻게 해서든 고스터버스터즈의 향수를 느끼고 싶은 분

4. 시간 많아 고통받는 분 

 

이상입니다! 

 



September 30, 2016 at 05:47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