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현직 변호사이고 평소에 별로 글도 안쓰고 얌전히 사는데 김영란법에 대해서는 정말 너무 엉뚱한 해석과 의견이 분분해서 법문 정도는 정리해드리는게 그나마 제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졸필로 글을 남깁니다.
참고로 저는 컴플라이언스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고 아니고 김영란법에 크게 관심도 없습니다. 저보다 전문가께서 등판해주시기를 기대하였으나, 아직 별다른 글이 없길래 우선 급한 불을 끄는 심정으로 마운드에 등판합니다.
1. 김영란법
김영란법은 법의 명칭이 아닙니다. 정식 법의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입니다. 법의 명칭에서도 드러나는 핵심적인 요건인 "금품등", "수수"가 무엇인가가 이 글의 주제가 될 것입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계속 김영란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2. 김영란법 이전의 세상-1
좀 이상하지 않나요? 예를 들면 현직 공무원인 진경준 검사장은 김영란법이 시행되기도 전인데 왜 벌써 구속되서 난리가 났을까요? 이건 당연한 것인데, 김영란법 전에도 당연히 형법상 '공무원이 돈을 받으면 안됩니다'. 제가 일부러 공무원이 돈을 받으면 안된다고 대충 써봤는데 이 직관적으로 당연할 것 같은 명제가 법상 구성요건을 빌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진경준 검사장에 적용되는 기본 3법 중 하나인 형법의 조항은 형법 제129조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및 이에 대한 특별법인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금액이 다액임에 따라 가중된 처벌 규정)입니다(이 외에도 공소장에는 경합하는 범죄가 더 있긴합니다만 논의의 편의상 수재에 한정합니다).얼핏 보면 공무원이 돈을 받으면 안된다는 얘긴데...싶은데 자세히 보면 여러 요건이 추가되어있지요.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이런 요건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형법 및 특가법의 예만 들었는데, 사실 김영란법 이전의 세상에도 다수의 부패 방지에 관한 법령이 있습니다. 부패방지법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및 공무원행동강령상 이미 공무원의 수재 행위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공무원 뿐만 아니라 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사인을 가중처벌 하는 규정(특경법상 금융기관 종사자의 수재 등)도 있습니다...즉, 김영란법이 천지개벽하는 법도 아니고 경제적효과는 말도 안되게 부풀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매드맥스나 소돔과 고모라에 사는건 아니잖아요.
3. 김영란법 이전의 세상-2
다시 형법 제129조로 돌아가 봅시다. 과연 위 형법 조항만으로 '공무원이 돈을 받는' 사태를 전부 방지할 수 있을까요?
가장 유명한 사례는 여러분도 기억하실 벤츠 여검사 사건입니다(사실 이 사건에서 적용된 죄는 특가법상 알선수재이지만, 논의 편의상 같은 선상에서 인용합니다). 벤츠 여검사는 내연관계인 변호사로부터 벤츠 및 고가 명품을 수차례 수수하여 사건 이름 자체가 "벤츠 여검사 사건"이죠. 놀랍게도 이 사건의 특가법상 알선수재죄 적용 여부에 대해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합니다. 이유는, 제공된 벤츠가 "사랑의 징표(판결문에서는 내연관계에 기한 경제적 지원이라 고상하게 표현합니다)"이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히 인용해 보면 "피고인이 공소외인으로부터 이 사건 신용카드 및 벤츠 승용차를 교부받은 시기와 청탁 시점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존재하는 점, 피고인과 공소외인의 관계 및 청탁을 전후한 시점의 카드사용액 등 내연관계에 기한 경제적 지원에 별다른 차이가 없는 점, 청탁 시점에 공소외인이 피고인에게 이 사건 신용카드 및 벤츠 승용차의 반환을 요구할 사정이 전혀 없는 점, 알선의 경위 등 그 판시와 같은 이유를 종합하면 피고인은 청탁 시점 이전에 내연관계에 기하여 교부받은 이 사건 신용카드 및 벤츠 승용차를 청탁 시점 이후에도 내연관계에 기한 경제적 지원의 일환으로 계속 사용하거나 보관·사용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청탁과 사이에 대가관계가 없다"입니다.
정말 황당하죠. 혹시 저만 황당한가요? 이게 왜 황당하냐하면 사실 검사는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을 독점하는 수사기관인데, 관할 지역 내에 변호사가 벤츠도 주고 계속 명품백도 사주면 해당 변호사가 변호인으로서 (추후) 담당하는 사건을 검사가 공정한 눈으로 볼 수 있을까요?
벤츠 여검사만큼 센세이셔널하지는 않지만 더욱 막장(?)인 진주 검사 스폰서 사건도 있습니다. 시사프로 같은데 종종 나오는 소재인데, 건설사 사장 등이 진주 일대 검사들에게 20년 이상 온갖 접대(성접대 포함)를 하고 별 문제 안됐던 사건입니다(어느 정도는 문제 됐습니다만 다수의 접대는 일죄를 구성하지 않았습니다);;; 왜 문제가 안되나하면 구체적인 청탁 혹은 제공된 금전 향응에 대가성이 부정되기 때문입니다. 즉, 돈 좀 있는 사장님들은 특별히 부탁할 아젠다가 없는데도 그냥 검사들을 계속 밥사주고 술 먹이고 성접대하는 등 스폰서를 한 겁니다(영화 같은 데도 나오죠). 이런식으로 계속 스폰서를 하면 해당 검사가 정말 문제가 터졌을 때 알아서 잘 봐줄거라는 것이죠. 일종의 보험 개념입니다.
이런, 나라가 개판이네!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사실 이건 법치와 민주주의(헌법에 기반한)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형법은 이른바 죄형법정주의 및 명확성의 원칙에 엄격한 적용을 받습니다. 형법은 국가에 공권력을 이용해 개인의 자유, 재산 등에 형벌을 가하는 강력한(예외적인) 권한을 부여하는데 이러한 강력한 힘은 남용되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명확한 근거에 의해서만 행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구성요건을 법에 명확하게 정해 놓지 않으면 세상 나쁜짓을 해도 절대 못 잡아 넣는 것입니다.
즉, 위 벤츠 여검사 및 진주 스폰서 사건을 보면, 기본적인 형법의 "뇌물죄" 법리가 적용되는 한계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뇌물이라고 써놓는 이상 대가성이 전제됩니다. 바로 이런 나쁜놈들을 때려잡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자는게 김영란법의 시발점입니다.
4. 김영란법의 혁신
이제 김영란법을 봅시다. 우선 김영란법 전체를 검색해봐도 "뇌물"이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김영란법은 "금전등"을 주고 받는 것을 제한합니다. 훨씬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단어를 사용하였지요.
뇌물등은 무엇이냐? 다음과 같습니다(법 제2조 제3호)
가. 금전, 유가증권, 부동산, 물품, 숙박권, 회원권, 입장권, 할인권, 초대권, 관람권, 부동산 등의 사용권 등 일체의 재산적 이익
나. 음식물·주류·골프 등의 접대·향응 또는 교통·숙박 등의 편의 제공
다. 채무 면제, 취업 제공, 이권(利權) 부여 등 그 밖의 유형·무형의 경제적 이익
어때요? 근사하쥬? 그동안 뇌물, 금전, 향응 등으로 사용하던 용어들을 통채로 잡아 넣은 정의(catch all) 조항입니다.
이러한 금전등을 주고 받는 행위를 어떻게 규제하느냐가 핵심입니다. 법 제8조 "금품등" 수수 금지에 대한 조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8조(금품등의 수수 금지) ① 공직자등은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후원·증여 등 그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
② 공직자등은 직무와 관련하여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 제1항에서 정한 금액 이하의 금품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
③ 제10조의 외부강의등에 관한 사례금 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금품등의 경우에는 제1항 또는 제2항에서 수수를 금지하는 금품등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
2.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 등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가액 범위 안의 금품등
(생략)
자, 이걸 어떻게 해석할까요? 우선 위 제1항과 제2항을 보면 "직무 관련 여부...관계없이"와 "직무와 관련하여"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구성요건이 등장하는데 바로 "직무 관련성"의 요건입니다. 다시 형법상 뇌물죄를 돌아보면 형법에서는 "직무와 관련하여" "뇌물"을 받는게 죄였죠. 김영란법은 제2항에서는 "직무와 관련하여" "금전등"을 받는 거이고, 제1항에서는 "직무 관련 여부와 무관하게" "금전등"을 받는 것입니다.
뇌물은 대가성이 전제되는 단어라고 했죠? 그럼 위 세가지 규정 중 가장 구성요건이 복잡(즉 적용이 어려운, 빠져나가기 쉬운)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형법입니다. 형법상 뇌물죄는 "대가성" "직무관련성" "금전"이 다 필요합니다. 반면 김영란법 제8조 제2항은 대가성은 필요 없고 "직무관련성" "금전등"이 필요하고 제1항은 대가성 직무관련성 다 필요 없고 "금전등"만 필요합니다.
자, 그럼 제1항은 정말 엄청난 법이고 이거 때문에 경제 파탄나겠구나 싶으신가요? 아닙니다. 제1항의 뒷부분은 쉽게 써있죠. 즉, 직무관련 여부 명목에 관계 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등을 받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진주 스폰서 검사 사건을 봅시다. 건설사 사장이랑 검사랑은 직무관련성이 없죠(둘이 일하는 사이가 아니니까요). 전술했듯 특별한 아젠다를 두고 청탁을 하거나 대가성 있는 금품을 제공한 것도 아닙니다. 한 20년 그냥 동향 검사를 스폰서하거나 진주까지 내려와서 고생하시는 엘리트 검사님들 밥 좀 사준겁니다. 이게 바로 제8조 제1항의 범위를 넘어가면 걸리는 겁니다. 스폰서, 보험 등으로 불리는 이런 행위를 (전혀 하지말라는 것도 아니고) 1회 100만원 초과(좀 좋은데 가야겠죠? 1인당 100만원 초과입니다) 혹은 1년에 300만원(1년 동안 열심히 누적해서입니다) 초과만 하지 말라는 겁니다. 김영란 법이 있어도, 여전히 건설사 사장님들은 100만원짜리 술은 한번쯤 사줘도 되고 1년에 300만원어치까지는 좀 사줘도 되는 겁니다(대가성, 직무관련성이 없다면요)-물론 공무원행동강령 등이 문제될 수 있는데 그냥 이 글에서는 김영란법이 있고 없고의 효과만 이분법적으로 따지는 겁니다.
제2항은 이제 좀 감이 오시죠? 벤츠 여검사 사건입니다. 동일한 관할에서 근무하는 검사와 변호사 사이에는 상당한 직무관련성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둘이 직무관련성을 두고 만나네요. 제2항은 구성요건이 더 엄한 대신 금품등의 수수액 기준은 더 낮죠. 즉 위 100만원 / 300만원 이하의 금원에도 적용됩니다. 즉, 변호사가 내연 관계의 검사를 데리고 가서 62만원짜리 밥을 사주면 안되는 겁니다(이건 사랑의 징표여도 안되는 겁니다...).
그럼 변호사가 검사를 데리고 가서 150만원짜리 밥을 사주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제1항이 적용됩니다. 제1항이 더 나쁜놈이고 따라서 김영란법은 제8조 제1항의 위반은 벌칙(형벌입니다.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3년 이하 징역)을 적용하고 제2항은 행정제재(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적용하여 양자를 구별합니다.
5. 문제의 3 / 5 / 10
김영란법으로 인해 한우의 눈물 굴비의 비명으로 우리 농가가 다 망하게 됐다죠. 그나마 이에 대한 구원 투수가 바로 위 법 제8조 제3항 제2호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가액 이하의 금품 등 수수 허용 조항입니다. 위 법에 근거하여 대통령령(김영란법 시행령)에는 음식물 3/ 선물 5/ 경조사비 10만원의 예외가 정해졌습니다. 즉,음식물 3만원 사주면 김영란법 제8조 제1항에도 안 걸리고 제2항에도 안 걸립니다.
다시 예로 돌아오면 진주에서 스폰서 하고 싶은 사장님도, 변호사도 검사한테 3만원짜리 밥은 사줘도 됩니다. 결혼식 가서 10만원쯤 축의금 내도 되고요. 이건 아예 카운트가 안 하는 겁니다.
건설사 사장님도 아니고 변호사도 아닌 우리 얘기로 돌아와 보죠. 김영란법이 세상 난리가 난 이유 중 하나는 김영란법상 금품등의 수수를 할 수 없는 주체에 언론사 기자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네 공부 잘하는 친구가 메이저 언론사에 들어갔는데 같이 술을 먹는 경우를 생각해보죠.
저는 동네에서 피씨방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피씨방 주인과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가 사적으로 만나는 자리에 직무관련성이 인정될까요? 당연히 아니죠. 그럼 사실 저는 피씨방이 엄청 잘되서 기자 친구보다 훨씬 잘 버는데 이 친구한테 얼마나 쏴도 될까요? 네 오늘 100만원 1년 동안 300만원입니다. 이 정도를 쏴도 되는데...정말 우리 경제가 파탄날까요?
이번에는 우리 아이들의 선생님을 한번 만나봅시다. 김영란 법상 금품등 수수를 할 수 없는 또하나의 주체는 교사입니다. 이번에는 학부형과 교사의 만남이라 직무관련성은 있을거 같죠? 역시 3만원까지는 쏴도 됩니다. 한번에 한 20만원 쏘면요? 과태료 나옵니다(걸리면요). 150만원쯤 쏘면요? 이제 형사처벌 대상입니다. 어떠신가요? 우리 아이들 선생님한테 3만원 정도 식사는 부모로서 신나게 사도 되는데 이정도로는 많이 부족할까요?
(직무관련성이 있음을 전제로) 경조사비 10만원도 우리네 상식에서는 문제 안되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직무관련성이 없다면(개발자님과 죽마고우인 선생님인 친구 간에 직무관련성이 있나요?) 축의금으로 100만원 내도 됩니다. 직무관련성이 없다면 적용되는 조항은 김영란법 제8조 제1항뿐이고 1회 100만원 초과 1년 300만원 초과만이 처벌됩니다. 정말 이 법 때문에 경제가 파탄날까요?
편하게 낮은 단위부터 생각하시면 됩니다.
(i) 3/5/10 이하의 금전등 제공은 김영란법상 뭘해도 아무 문제 안됩니다(대가성이 있어서 형법이나 기타 다른 부패방지법의 구성요건에 걸려버리면 안됩니다...물론 검사들이 이걸 기소할만큼 한가하지는 않습니다).
(ii) 3/5/10을 넘어가면 문제가 되기 시작하는데 직무관련성이 있으면 문제가 되죠. 이건 상식적으로 당연한 겁니다. 왜 직무관련성 있는데(영업사원, 교사-부모, PR팀과 기자 등) 일당이 타방에게 고액 접대를 하는게 당연한가요? 그냥 더치페이 하면 천만원어치 먹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촌지로 20만원 드렸습니다. 걸리면요? 과태료 내시면 됩니다. 전과 남는거 아니에요.
(iii) 이제 100만원을 넘어가면 직무관련성도 요건이 아니니 접대하면 안됩니다. 그냥 동네 죽마고우인 검사, 교사, 기자 등 친구에게도 100만원 초과하는 술 사지 않는 겁니다. 1년에 300만원 초과하는 술도 사지 않는거구요...이거는 걸리면 감옥도 갑니다. 무섭나요? 이게 정말 보통 사람들 삶에 지장이 있는 건가요?
6. 기타
사실 김영란법은 금품등 수수 뿐만아니라 부정청탁, 배우자 신고 등 여러 이슈와 시사점이 있습니다. 시간 및 지면 관계상 추가 논의는 생략하겠습니다.
위에 써있는 내용들은 전제 하였듯 단순히 법문만 분석한 것이고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한 전문가의 법적 판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위 내용 중 틀린 내용이 있어도 저는 정말 아무런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정말 어디 잡혀가셔도 저는 아무 책임 안집니다). ^^
상식적인 선에서 김영란법의 의미를 소개하고 법문을 한번쯤 읽어보시는 장을 마련하여, 보다 건설적으로 김영란 법의 명암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일 뿐입니다.
July 30, 2016 at 02:26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