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 뜨거운 이슈인 것 같습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이었던 조선해운업의 사정이 워낙 좋지 않디 보니, 연일 언론에 관련 이슈들이 오르내리고 있지요. 기본적으로 낙관론자인 제가 봐도 최근의 상황은 꽤 위험한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다만 다수의 언론에서 당연한 사실인 양 언급되는 주장에 비록 문외한이지만 의문을 느끼는 것들도 있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간단하게 몇 자 적어보겠습니다.
해운업, 위기?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해운업은 한국에서 몇 안 되는 국제 경쟁력을 가진 서비스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서비스업은 제조업과 달리 교역이 힘든지라 국가 간의 경쟁이 미비한 편이지만 특히 한국의 서비스 산업은 제조업에 비해 대외경쟁력이 부족한 편입니다. 반면에 해운업은 규모에서나 대외수지의 측면에서나 양호한 실적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한국의 양대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위기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한국 해운업의 위기'하는 얘기가 심심찮게 보입니다.
사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라는 두 회사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이건 최근의 일도 아니고 몇 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증권사나 신용 평가사 등 관측자들의 평을 보면 이미 돌이키기 힘든 것 같기도 하고요. 다만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위기가 곧 한국 해운업의 위기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통계를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은 2014년 기준 그리스, 일본, 중국, 독일에 이어 5번째로 많은 선복량을 자랑하는 나라입니다. 여기서 선복량이란 배가 실을 수 있는 화물의 무게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해운 강국에서 이 선복량에서 외국선사의 배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크다는 점입니다. 세계 30대 해운국의 외국적선 비율은 척수로는 61.6%(DWT 기준 74.2%)이었고, 우리나라 외국적선 보유 비율은 척수로는 56.6%(DWT 기준 81.0%)로 다른 국가들과 유사한 수준이었습니다. 언론에서 흔히 해운업 경쟁력 지표로 국가의 지배선대를 드는데, 이 지배선대에서 국적선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해운업에 문외한이라 이 국가에 등록된 선복량, 지배선대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해운이라는 것은 국가를 오고가며 운송서비스를 제공하는 존재인 만큼 철강 생산량이나 일일 정유량과는 다소 다른 의미일 것 같습니다.
국적선사들의 경우를 보면 이렇습니다.
양대선사를 제외하면 한국의 해운사들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경영실적을 보여주고 있고, 압도적인 매출액 규모와는 달리 선복량 기준으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이미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조선업과는 달리 해운업의 위기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라는 두 회사에 한정되었는데, 양대선사의 위기가 곧 한국 해운업의 위기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하는 얘기입니다.
한국의 조선업은 중국에게 뒤쳐지고 있나?
그런데 해운업과는 달리 조선업은 정말로 거대 회사부터 중소형 조선사까지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많이 언급되는 것이 '중국과의 경쟁'인데요, 사실 이런 레토릭에서도 저는 의문을 좀 느낍니다. 증권사 리포트에서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자료를 몇 개 인용해 보겠습니다.
먼저 언론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지표인 '수주량'과 '수주잔량'이 조선업 경쟁력을 얼마나 잘 나타내는지에 대한 비판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해양 플랜트를 잔뜩 수주했다가 피를 본 한국에서 언론들이 수주량을 만능 요술봉처럼 휘두르는 걸 보면 다소 황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데요, 수주량과 수주잔량이라는 것은 수익성이 전제되지 않은 매출의 개념입니다. 적자를 보는 저가 수주를 잔뜩 하거나 일정을 맞출 수 없는 무리한 수주를 하더라도 수주량과 잔량은 급증할 수 있습니다.
해서 조선업의 진짜 경쟁력은 "인도량", 즉 수주 받은 선박을 완성하여 납품하는 양을 살펴봐야 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인도량에서 중국은 16년 1Q 기준 한국보다 적으며,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의 조선 산업이 직접적으로 경쟁하고 있지 않다는 근거도 있습니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 '조선업'은 하나의 산업이지만 그 안에는 정말로 무수히 많은 제품들이 존재할 텐데요. 한중 양국의 조선소들의 제품 포트폴리오는 상당히 다른 편입니다. 이는 수주잔고를 선박의 종류별로 나눠서 살펴보면 명확해집니다.
한국과 중국이 겹치는 부분은 탱커선과 컨테이너선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이 두 종류의 배 또한 선박의 규모에 따라 한중일 및 여타 국가들의 특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사실상 직접적으로 경쟁하고 있다고 보기는 곤란한 측면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중국의 조선업이 정말로 한국을 위협할 수준으로 성장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존재합니다. 증권사 리포트의 일부분을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중국 조선소의 생산성은 한국과 비교가 되지 못할 정도로 낮다. 룡셩조선 이후 중국 최대 민영조선소의 위치에 있는 양쯔장조선은 선박 건조 1척에 900명의 인력이 투입되고 있다. 최근 CSSC Offshore Marine으로 회사명을 바꾼 광저우조선은 선박 건조 1척에 1,100명의 인력이 투입된다. 한국의 현대미포조선은 선박 건조 1척에 130명이 투입된다. 인원당 매출액을 비교해봐도 마찬가지다. 양쯔장조선은 1인당 76.7백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 고 있다. 현대미포조선의 1인당 매출액은 300만달 달러이다. 선박 건조기간을 보더라도 중국은 한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중국 조선업은 벌크선을 주력 으로 삼고 있으며 한국의 주력인 탱커 건조경험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Jinhai 조선이 VL탱커를 몇 척 건조한 경험이 있지만 평균 건조기간은 무려 74개월에 달한다.
결론적으로 중국이 건조한 선박의 품질은 매우 낮으며 그로 인해 선박의 가치훼손은 매우 심하다. 아래 [표6]을 보면, 진하이조선이 2014년에 인도한 79K급 벌크선 New Excellence 호는 선박 인도와 동시에 52.9% 하락한 가격으로 중고선 매매되었다. 동일한 시기에 현대비 나신조선이 2012년에 인도한 56K급 벌크선은 신조선가 대비 13.8% 할인되어 거래되었다. 가치 하락이 매우 심한 중국 선박을 두고 과연 한국 조선업에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 조선업의 위기
그러나 중국이 위협적이지 않다고 해서 실적으로 드러나는 한국 조선업계의 위기를 마냥 부정하기는 힘듭니다. 소위 빅3부터 시작해서 중소형 조선소까지 거의 모든 업체들이 연속되는 적자와 끔찍한 부채 문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빅3의 경우 중국과의 경쟁보다는 해양 플랜트라는 미지의 분야에 무리하게 시도했다가 크게 당한 만큼 최근에는 사정이 그나마 나아진 편입니다. 삼성중공업은 2분기 연속 흑자를 봤고 현대중공업도 10분기만에 흑자 전환했습니다.
진짜 골칫덩이는 주인없는 대우조선해양과 중소형 조선소라고 볼 수 있는데요.
한국 조선업계에서 현대중공업그룹이 차지하는 압도적인 비중을 생각하면, 물론 특정 지역과 종사자들에게는 매우 절박하겠지만 일부 조선소가 문을 닫는다고 해서 국가적인 조선 산업의 몰락이라고 부를 만한 사태가 벌어질지는 의문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장에 있으신 분들이나 전공하신 분들의 지적은 언제나 감사히 받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쓸 때 참고할 리포트를 링크합니다.
April 30, 2016 at 03:14PM